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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정신의 힘에 대해

[존 맥도널드] 당신의 소원을 이루십시오 - 02. 그의 가르침

by 에레아나 201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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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도널드] 당신의 소원을 이루십시오



02. 그의 가르침 



이 법칙의 원리를 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때로는 어떤 명백한 모순들을 간과해달라고 부탁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문제를 논할 때면 필연적으로 그런 모순들이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충고를 명심하십시오. 


이 가르침들을 여러분 각자에게 다가오는 의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하는 말들 중에 만일 납득이 안 가거나 수긍이 안되는 것이 있어도, 억지로 그것을 이해하려 하거나 수용하려 들지 마십시오. 지금은 이해를 할 수 없거나 심지어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도 여러분의 수용력이 커 감에 따라 틀림없이 명백해지고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더러 삶에 따라서는 말의 표현을 다른 식으로 하면 그 의미가 더 뚜렷해지고 가슴에 더 잘 와 닿는 때도 있는 법이지요. 만일 내가 쓰는 표현들을 여러분 나름의 용어로 바꾸었을 때 그 말의 의미가 더 뚜렷해지고 여러분의 믿음이나 의식구조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된다면 마음 놓고 그렇게 하십시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여기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의심과 거부감을 갖고 접근하는 사람도 거의 배우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희망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주제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발전과 안락과 행복에 기여할 어떤 것을 기꺼이 배우려는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생각의 자유를 방해하는 셈이 될 테니까요. 다만 내가 하는 말에 의심이나 거부감을 갖지는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의심이나 거부감을 갖지는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의심이나 거부감은 여러분이 찾아 헤매는 생의 비결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최고의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꼭 다음과 같은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나는 이 가르침들을 열린 마음, 중립적인 자세로 귀담아들을 것이며, 이 가르침의 이점을 최대한 누릴 작정이다. 어떤 특정한 언급이나 명제를 지금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옳지 않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우주적 법칙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법칙의 작용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지니고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이해를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능하다면 나는 여러분 주위에서 볼 수 있고, 그래서 이런 진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그런 예들을 들어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수천 가지의 쓸데없는 가구와 그림, 장식품, 기타 잡동사니로 온통 어지럽혀져 곳곳에 뒤죽박죽으로 널브러져 쌓여 있는 집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 비록 그 집의 외부는 멋진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 내부는 혼돈과 무질서의 뒤범벅이죠. 그런 상태에서 무슨 일을 이루어 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원하는 한 가지를 좇아가다가 다른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질서가 없습니다. 목적이 없습니다. 진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집에서 여러분의 성공에 꼭 필요한 가구들만 남기고 나머지 잡동사니 모조리 치워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떻게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바늘 끝보다 훨씬 더 작은 미세한 세포에서부터 자라난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바늘 끝 만한 크기의 세포, 혹은 씨앗이 그 자신 속에 오늘의 여러분이라는 이 복잡 미묘하고도 경이로운 존재를 에센스로서, 완전무결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최초의 세포가 여러분의 몸, 머리, 머리카락, 팔, 다리, 손, 발, 그리고 인체의 그 모든 경이로운 기관들을 물질의 형태로 담고 있었을 수는 없겠지요. 그것들은 아무리 미세하게 만들더라고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러분은 오늘날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을까요? 그 세포에 작은 정신의 불똥 같은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세포는 정확히 자기 존재의 법칙에 따라, 하나의 확고한 영상, 다시 말해 여러분이라는 그림을 간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법칙에 따라 피어나고 자라서 마침내 ‘그려져 나온’ 것입니다. 즉 형체를 갖게 된 것이지요. 


설령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더라고, 머리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실히 인정할 수 는 있을 것입니다. 그 세포가 엄밀한 계획에 따라 성장하도록 하는 어떠한 힘이 그 세포 속에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어떤 형태의 지성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성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내가 세포 속에 작은 정신의 불똥이 있다는 말로 표현하고자 했던 바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배워 나갈 과정의 근본적인 토대가 될 테니까요. 그 요점은 바로 이렇습니다. 그 어떤 형태의 마음을 품든, 마음이란 것은 영상을, 그림들을 간직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어떤 마음속에서건 확고하게 맺힌 그림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저 위대하고 불변하는 우주적인 법칙으로서 우리가 현명하게 그 법칙과 함께 해 나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삶의 여러 조건과 환경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런 경우가 없었습니까? 남몰래 혼자서 마음속으로 어떤 특별한 것을 바라고 있었는데 얼마 안 가서 그것이 자기 것이 되었다든가, 혹은 어떤 특정한 사람과 만나게 될 것 같다고 느꼈는데 잠시 후 바로 그 사람이 나타났다든가..... 그럴 때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했겠지요. 


“대단한 우연의 일치야! 바로 오늘 아침에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결코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엄밀한 법칙의 작용이 낳은 당연한 결과일 뿐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의 모든 소망과 생각들이 다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을까요? 그 중 많은 부분은 현실로 나타납니다. 다만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해서, 저 우주의 법칙에 대한 무지로 인해서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나치고 말지만요. 그런가 하면 또 많은 부분은 전혀 그런 기미조차 없습니다. 


그 이유를 여러분이 잘 아시는 라디오를 가지고 설명해 보지요. 가령 다이얼 상의 어느 한 지점을 여러 개의 방송국이 경쟁적으로 쓰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특정한 한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려 해 본 적이 있습니까? 결과는 혼란스런 뒤범벅일 뿐이지요. 하지만 다른 방송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을 때 다이얼을 맞추면 깨끗이 잘 나옵니다. 바라던 대로 되는 것이지요. 


그와 꼭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소망이 일어나는 바로 그 때에 그것과 갈등을 일으킬만한, 그래서 그 힘을 없애 버릴 다른 어떤 생각도 없다면, 그 때 마음은 여러 갈래 생각으로 갈라지지 않고 비로소 그 엄청난 위력을 오로지 그 하나의 소망을 향해 투입해 줍니다. 그러면 그 소망이 ‘그려져 나오게 됩니다.’ 즉. 외부로 구체화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누구나 경험해 보았겠지만 문득 마음이 완전한 공백 상태가 되고, 그래서 무심코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되는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순간에 만일 어떤 소망이나 욕망 한 가지를 충분한 힘을 실어 주입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그 소망이 아주 순식간에 달성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속을 온통 차지하고서 생각의 힘을 약하게 만들고 있는 저 혼돈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러분 내부의 힘보다 더 큰 힘이나 세력이 외부에 있다는 믿는 그릇된 신념체계 때문입니다. 그러나 훈련 방법을 통해 여러분의 내면에 변화가 와서,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모든 건설적인 생각들이 외부로 구체화되는 상태가 되면, 그 때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건, 모든 상황의 지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증명할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바로 그것을 직접 해 보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다음으로 배워야 할 단계는 이것입니다. ‘어떤 사물, 어떤 조건, 어떤 환경이든, 그것에 대한 의식 혹은 마음속의 확고한 그림은 그 자체가 바로 실물이요 실제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감을 통해 경험하는 사물이나 현상이란 실은 밖으로 그려져 나온 정신 속의 영상입니다. 


정신의 영상이 육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는 실물이 된 것이지요. 그것은 마치 화가가 자기 머리 속의 그림을 캔버스에 옮겨 놓는 것과 꼭 같습니다. 화가의 손은 단지 마음이 자기표현의 통로로 삼는 도구일 뿐입니다. 화가의 손은 마음이 이끌고 지시하는 대로 할 뿐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사람의 몸 전체의 세포 하나하나는 계속 죽고 사라지기 때문에, 1년만 지나도 전에 있던 세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러 해 전의 일을 기억합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많은 어린 시절의 일까지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토록 오랜 세월 전의 일을 거슬러 기억할 수 있는 있을까요?   여러분의 뇌세포 전부가 교체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니구요. 


독자적인 우주 속에서 움직이는 독자적인 존재로서 - 우리 모두가 그렇지요 - 여러분은 전능한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종의 수레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이고 여러분의 몸은 하인입니다. 몸은 표현을 위한 여러분의 도구지요. 그뿐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진짜 몸일까요? 


여러분이 여기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마음속에 그림으로, 영상으로 간직되는 그 몸일까요. 아니면 해가 바뀔 때마다 허물어져서 흙으로 돌아가 버리는 그 몸일까요 ?


또 어느 것이 그 사물들이 진짜일까요. 아니면 외부세계에 보이는, 잠깐 존재 했다가는 이내 분해 되어 버리는 그 사물들이 진짜일까요?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나는 외부세계가 인간의 성취에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2차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음의 작용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이 지금 시작하는 여러분에게는 1차적인 중요성을 가집니다. 


여러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속의 그림이 실체화되는 과정을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애써 그렇게 설명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데, 그래서 오히려 여러분을 더 혼란스럽게만 만들 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어란 이러한 우주적인 법칙의 한층 더 심오한 부분을 설명하기에는 빈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것을 이해라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차근차근, 참을성 있게 그것을 향해, 그리고 그 속으로 전진해 들어가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거기까지는 몰라도 이 법칙을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 마치 햇빛이 지구에 전달되는 이치까지는 몰라도 햇빛을 즐길 수 있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나의 목적은 진실됨을 믿고 있지요. 예 좋습니다. 바로 그 만큼 이 법칙의 힘도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벌이는 그 어떤 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다음 단계로 갑시다. 


아마 여러분은 ‘사람이 여럿이면 마음도 여럿’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여러 개 있다는 식의 말은 단지 하나의 관용적인 표현, 그냥 통용되는 표현일 뿐입니다. 과학에서도 현실에서도 그 말을 입증해 줄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마음이 있을 뿐이지요. 오직 하나의 전기가 있고, 오직 하나의 대기가 있듯이 말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여러 개의 마음이란 오직 하나인 마음의 다양한 표현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공기나 전기를 끌어 쓰듯이 각자의 요구에 맞게 마음을 끌어 씁니다. 그러면 이제 내가 다음 단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순을 하나를 잠시 참고 들어 주기 바랍니다. 여기서 나는 세 개의 마음을 언급해야하겠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음의 세 가지 양상이 되겠지요. 


우리는 확실히 세 개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신체의 기능을 조절하는 마음인데, 더 나은 말이 없으니 나는 그것을 ‘깊은 쪽 마음’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마음에 대해서는 우리는 특별히 관여할 것이 없고 또 관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 마음은 자기 할 일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의 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마음에 협조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건강이나 체력 면에서 이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깊은 쪽 마음’의 정당한 작용을 방해하지 않으면 그것이 매우 잘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관심을 갖는 것은 나머지 두 마음입니다. 내가 ‘안쪽 마음’과 ‘바깥쪽 마음’이라고 부르는 두 가지죠. ‘바깥쪽 마음’은 다섯 가지 감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부의 사물이나 현상과 접촉하고 있는데 그 본연의 역할을 자신의 욕망을 ‘안쪽 마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안쪽 마음’ 우리 내부의 힘의 중심으로서, 그 본질상 어떤 것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분별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불가능도 실패도, 장애도 모르고 어떤 것의 한계나 결핍도 모릅니다. 안쪽 마음은 바깥쪽 마음이 인도하는 대로 이끌리면서, 바깥쪽 마음이 지시하는 그 어떤 것이건 자신의 엄청나고 무한정한 힘을 보냅니다. 


안쪽 마음의 본질을 다시 한번 전기에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겠군요. 전기가 세상의 위대한 힘이라면, 안쪽 마음은 여러분이 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힘입니다. 이들 어느 쪽도 자발적으로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양쪽 다 그들을 발동시키는 별개의 요인에 의존합니다. 또한 양쪽 다, 지혜의 지시를 받았느냐 무지의 지시를 받았느냐에 따라서 바람직한, 또한 해로운 결과를 몰고 옵니다. 


그렇다면, 바깥쪽 마음이 안쪽 마음과 단합하여 서로 협력을 이루어 나간다! -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인간사에서 실제 사정이 바로 그렇게 돌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자기 상황의 노예가 아니라 지배자가 되겠지요. 


그런데 어째서 우리 모두가 자기 상황의 지배자가 되지 못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이렇게 됩니다. 바깥쪽 마음이 하나의 욕망을 만들어 냅니다. 이 욕망은 자동적으로 안쪽 마음에게로 넘겨지고, 안쪽 마음은 즉시 그 욕망을 실현시키는 일에 착수합니다. 


 그런데 안쪽 마음이 그 방향으로 자신의 거대한 힘을 쏟으려고 하는 바로 바로 그 찰나에 바깥쪽 마음은 또 새로운 욕망을 하나를 찾아냅니다. 아니면 그 욕망의 실현을 가로막는,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장애 요인을 상상해 버립니다. 안쪽 마음이야 표면에 나와 있지도 않고. 외부 세계의 사물들과 접촉도 없고, 그래서 바깥쪽 마음이 일러주는 것에만 매달리는 형편이니까, 부득이 그 힘을 딴 데로 전환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꾸만 자꾸만, 마치 여기저기 새는 스팀 파이프처럼, 그 경이로운 힘을 온 사방에 뿌리기만 할 뿐 정작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안쪽 마음이 뭔가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때 마다 이런 식으로 가로막히게 될까요? 


 


그것은, 바깥쪽 마음이 모든 판단을 눈과 귀의 보고에만 의존하여 내리고는 그 사항을 안쪽 마음에게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볼까요? 


 


그들은 외부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사진 찍어’ 자신의 내부에다 ‘인화해’ 놓습니다. 그 과정은 정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능력과 힘으로 우리 내면에 멋진 영상들을 창조할 수 있고, 그래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외부 세계에 인화되어 나타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으면 지배자의 경지에 오른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바깥쪽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범인 같이 보이거든요.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깥쪽 마음은 날마다 수천 가지의 경험들을 하고 있으니까 웬만한 훈련 방법으로는 효과를 보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아니 최상의 방법이라 해도 그렇게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것은 길고도 지루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여기 훨씬 신속하고 좋은 방법, 바깥쪽 마음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음이 이 방법의 첫 단계입니다. 





 


 


11. 


가령 여러분에게 가능한 빨리 어떤 도시로 가야 할 급한 일이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차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서 자연히 목적지를 ‘마음속에 그릴’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방향으로 향하겠지요. 만일 길을 확실히 모른다면, 아마 옆길로 새기도 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결국은 여러분의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려는 장소에 대한 ‘마음속의 그림’의 인도를 받아 마침내 그곳에 도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이를 때까지 ‘확고하고 분명한 목표’를 고수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특별히 애를 쓰거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혹은 목적지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고,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옳은 길로 도로 나왔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크게 성취하려면 ‘확고하고 분명한 목표’기 먼저 세워져야만 합니다. 





 


확고하고 분명한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인가? 아닙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아니지요. 여러분은 하룻밤에 백만 달러라는 돈을 뚝딱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겠습니까 ? 


 


예, 그럴 수도 있겠지요. 백만 달러를 즉석에서 가능한 것으로 볼 능력만 있다면요. 그러나 그것은 아주 별난 경우지요. 현명한 방법은 점진적으로 거기에 이르는 겁니다. 마치 마라톤 주자들이 점진적으로 거기에 이르는 겁니다. 마치 마라톤 주자들이 하는 것처럼 우선 1 마일을 달리고 그 다음에 2 마일, 다시 3마일..... 그렇게 점차 자기 역량을 늘려 나가서 결국 전 코스를 커버해 내는 식으로 하는 거죠. 



 


 


왜 확고하고 뚜렷한 목표가 필수적인가 ? 


 


거기엔 세 가지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안쪽 마음은 여러분 존재의 양극이고 바깥쪽 마음은 음극입니다. 우주의 만물 하나하나에는 반드시 양성과 음성이 있음으로써 완전한 하나의 원이나 회로를 이루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활동도 동작도 있을 수 없겠지요. 뒤쪽이 없다면 앞쪽이 없을 것입니다. 아래가 없다면 위도 없을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악이라는 것이 없다면 결코 선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둠이 없다면 어찌 빛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반대의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남게 됩니다. 



 


법칙을 따르는 우주 만물에 있어서는 양성이 우세를 점하여 지배하고 음성이 복종합니다. 그런데 인간에서는 이것이 뒤바뀝니다. 봉사해야 할 바깥쪽 마음은 세상을 보면서 다툼과 경쟁, 방해물. 이런 종류의 상황들을 보고합니다. 왜 정해진 방향이 없거든요. 목적 없이 방황하도록 내버려져 있거든요. 그래서 갈팡질팡하면서 아무 것이나 받아들이다 보니 그러는 것입니다. 



 


확고하고 분명한 목표가 마음속에 영상으로, 그림으로 단단히 잡혀 있으면, 그것은 바깥쪽 마음을 채찍질하여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해 줍니다. 바깥쪽 마음에게 이행해야 할 ‘확실한 책무’를 줌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러면 이것이 자동적으로, 여러분으로서는 전혀 애쓰지 않아도, 바깥쪽 마음에게 안쪽 마음의 긍정적인 성질을 불어넣습니다. 그리고 역시 자동적으로 마치 쇠붙이들이 자석에 당겨지듯이 긍정적인 상황들과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당겨져 옵니다. 이것이 바로 확고하고 분명한 목표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로, 이 허공은 억조로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생각들,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각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나라에는 수백 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있어 동시에 방송을 하고 있으니 이것을 생각하면 혹시 공기 속의 생각들이라는 개념이 조금은 이해될지 모르겠군요. 모든 사람은 방송국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수신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질문을 말로 나타내기 전에 내가 그 질문에 즉각 답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생각을 표현하기도 전에 나는 그 수신하고 있는 있었던 것입니다. 이 능력은 항상 내 속에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여러분 속에도 있습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불러내어 사용하고 있고, 여러분의 것은 거의 완전히 잠든 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확고하고 분명한 목표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것에다 주파수를 맞추고 있는 것이니 결국 어느 것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이죠. 그들은 수백만 개의 상충하는 생각들에 끌려 다니느라 삶이 혼란과 고뇌와 가득 차 있습니다. 반면에 분명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주도면밀하게 ‘단 하나’에 주파수를 맞춥니다. 그것이 돈이라면 그들은 돈을 얻습니다. 그것이 지위라면 그들은 지위를 얻습니다. 그런 사람이 주파수를 맞춘 그 어떤 것이든 바로 나오게 됩니다. 



 


 


셋째로, 어떤 것에 마음을 정하게 되면 그것이 크든 작든,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 가령 연필이나 모자, 자동차, 집, 큰 재산, 교육, 직업, 혹은 여행,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은 자기 생명력의 일부를 그것에 옮겨 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끌려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한 계속 자양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강렬해진 그 욕망이 이제는 위력을 뻗칠 방향이 잡힌 여러분 내면의 힘을 다스립니다. 



 


 


이제 아실 겁니다. 그 위력을 여러 개의 목표에 맞추면 그것이 분산되어 각각의 목표는 희미한 자극만을 받게 되고, 그 결과 반응이 느리게 나타나거나 반응이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하나의 원대하고 궁극적인 목표, 그래서 그것에 도달하자면 보다 작은 많은 목표들을 내야 하는 그런 목표가 있습니까? 자 그렇다면, 그 많은 목표들을 우선 접어두고 가장 가깝거나, 맨 앞에 있는 것에 여러분의 힘이 향해지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그것이 얻어지면 그 다음으로 넘어가고, 다시 그 다음의 것, 그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 어디 봅시다. 이것으로 여러분에게 이 법칙의 전부를 전수했나요? 


 


어떻게 보면 그랬는데, 또 어떻게 보면 아직 그러지 못했군요. 무엇을 할지를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 더욱 좋지요. 어떻게 얻느냐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얻은 것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를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좀 더 나아가, 나는 여러분에게 성공적인 목표 달성의 중요한 요건 하나를 설명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밀의 유지’라는 것이지요. 





 


 


12. 


비밀 유지의 중요성을 설명하기에 앞서 다른 주제 하나로 시작을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이 “나는 ~~~이다.” “나는 ~~~하겠다.” “나는 ~~하였다.”라고 표명할 때, 여러분은 아주 의미심장하고 위력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이라고 표현할 때 방출되는 그 힘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위대한 선언을 들어 보십시오.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시대를 초월하는 생명력을 자랑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린 말이지요. 알고 보면 그 말은 우리들 각자들 저 개체를 초월하는 우주적인 힘과 하나로 이어 주는 선언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개체적이지만 여러분이 말하는 ‘나’는 우주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 우주에는 오직 하나의 ‘나’가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온 우주에 오직 하나의 수 ‘1’이 있을 뿐이듯이 말입니다. 다른 수들은 단지 1이 증식되거나 1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합니다. 가령 7은 1 그 만큼 반복된 것이지요. 이 가르침의 세부 사항을 이해하는 기본적 바탕이 바로 이것입니다. 즉, 그 ‘나’가 모든 근원으로서, 1이라는 수도 그것을 근원으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해 온 말로 미루어 여러분은 다음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안쪽 마음으로 일하고 있을 때는, 개체를 초월하는 저 우주라는 무제한의 원천에 원조를 청하고 받으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상태에 이를 수 있느냐구요? 


 


쉽게 이런 대답을 드리지요. 이제부터 내가 그 요점을 말하려는 실행 방법을 그냥 따르기만 하면, 여러분은 자연히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상태로 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 위대하고 위력적인 ‘나’ - 그것은 개인적으로 말했을 때는 다름 아닌 바로 여러분 자신이니까, 어떤 힘이 여러분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는지 여러분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주인이  되었다는 시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직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러한 자질만은 펼쳐지고 쓰여지기를 고대하며 여러분 속에 있습니다. 방금 이 말이 명확히 이해가 안 되더라도 지금은 그대로 두고 다음 공부로 넘어갑시다. 나중에 혼자서 잘 생각해 보면 그 참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시시콜콜 설명할 필요성까지 있느냐고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란 바로 여러분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깊이, 아주 맹렬하게 생각하도록 말입니다. ‘맹렬하게’라는 말을 ‘바짝 긴장해서’라는 뜻으로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긴장한다는 것은 심리적 압박을 의미하고, 두려움과 조바심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 모두에 파괴적입니다. 내가 ‘맹렬하게’라고 할 때 그것은 정신적인 힘과 기세를 두고 하는 말로서, 그것의 결과는 건설적입니다. 



 


 


여러분의 진보는 여러분이 정해진 방향으로 얼마나 지속적인 맹렬함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늘날에는 매우 급속한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지요. 우리도 세상의 속도만큼 빨리 따라가거나 아니면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포기해 버린다면 그 즉시 뒷골목 인생으로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지속적인 성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상보다 조금 더 앞서가야 하겠죠. 



 


 


어떤 목표에 더 빨리 이르고자 하는 끈질긴 인간 내면의 욕구는 마침내 순수한 결정(結晶)을 이루어서 자동차라는 형태로 스스로를 그려내었습니다. 그것은 범용성을 갖춘 신속한 이동 수단의 위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속성이란 끊임없이 보다 더 큰 성취를 향해 손을 뻗치는 것이어서 이번에는 비행기가 출현하였습니다.


 


 마음의 흐름은 그렇게 나아가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나아갈 것입니다.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여러분은 분명히 그런 경향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뻗어나가고 있으며, 신속한 이동 수단은 비행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주적인 법칙을 알고 사용하는 사람은 최상이라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 무지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보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릇된 자기 신념체계의 굴레 속에 그냥 눌러앉고 맙니다. 그러니 너무도 중요한 것은 ‘물리적 힘으로써’ 일을 완성하려 드는 낡은 방법을 따르기보다는 ‘생각으로써 일을 완성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전자는 노예의 길이며, 후자는 지배자의 길입니다. 



 


비밀 유지가 중시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습니다. 개체를 초월하는 우주적 존재인 ‘나’는 어떤 말이든 자기와 결부된 말이 나오면 그것을 따라서 자신의 힘을 쏟아 놓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계획이 말로써 표출되면, 그 계획은 여러분에게서 풀려나 버리고 계획의 위력이 허비됩니다. 바깥쪽 마음은 도피할 길을 찾아내고, 여러분이 목적한 바는 필수적인 추진력을 잃어버리겠지요. 



 


 


13. 


다음으로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영양공급’ 혹은 ‘비축’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지요. 정말 지속적인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뛰어난 성공이 비교적 드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여러분의 위대한 힘은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존재의 깊은 부분인 안쪽 마음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배웠습니다. 보통사람들은 그들의 엄청난 내면의 힘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표면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별로 확신도 갖지 않는 일을 바깥쪽 마음에게 맡깁니다. 그리고는 바깥쪽 마음의 잘못된 보고에 지배되어 버립니다. 그 결과 마침내는 굴복하여 실의와 상심에 빠지고 몸과 마음을 상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어째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자기 건강과 활력을 그것과 맞바꾸는 값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그토록 일반적인 통념이 되어 버렸는가? 그 이유는 전에 말한 바 있지요. 사람이 노력의 초점을 한 가지 주어진 목표에 되면 그들은 자동적으로 소중한 자기 생명력의 일부를 거기에 옮기게 되게 때문입니다. 


 


그러는 것까지는 전적으로 잘된 일이고, 또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계속하면서 그 생명력을 재충전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 영양공급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고갈되어 버리고, 결과적으로 항상 어떤 문제가 야기됩니다. 



 


 


무엇이든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그것도 무제한으로 가지는 것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정당한 유산이자 천부의 권리입니다. 여러분 중 한 사람, 가령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들이 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바로 당신이 쓰고 즐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왜 여기 있겠습니까? 


게다가 ‘당신의’ 그 개인적인 욕망을 아는 것은 오직 ‘당신’ 뿐이니까 그것들은 특별히 당신만을 위해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존재의 법칙을 알고 그것과 협력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부와 지위를 얻으면서, 건강과 행복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가난을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습니다. 가난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저주입니다. 


 


그런 교리를 설교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난의 축복됨을 설교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세상의 좋은 것들에 대한 그들의 욕망은 그들의 가슴을 야금야금 파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법칙의 근본 원리를 배운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개성에 따라 이 법칙을 다소 다른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내가 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 언급하는 일을 일부러 피해 왔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할 자유와 자기 나름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방식에 대한 힌트 하나 정도는 주고 싶군요. 단, 충고하지만, 이것에 영향을 받아 여러분만의 고유한 방식을 뜯어고치거나 하지는 마십시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따라하거나, 관습이나 전통을 추종해서는 결코 대가의 경지에 오를 수 없는 법입니다. 겁쟁이들과 좀생원들이나 그렇게 하는 거지요. 대가와 선구자들은 결코 그러지 않습니다. 



 


 


만약 화가가 커다란 떡갈나무를 그렸는데 풀밭과 수풀, 꽃들, 잎사귀, 그리고 하늘과 구름 등 자연 배경을 넣지 않았다면 그 그림은 정말 바보 같고 재미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화가는 자연의 충실한 복사판을 만들어 냅니다. 화가와 나의 방법이 비슷합니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화폭에 담고 나는 나의 그림을 나의 내면에 담는 거지요. 화가는 화폭에 떡갈나무를 놓이게 하고 그것에 주변의 자연물을 함께 줍니다. 나도 같은 일을 합니다. 자신의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화가는 그 목적에서 자기를 떼어 놓으려는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할 정도로 그것에 집중합니다. 나도 그렇게 합니다.  때로는 외부 세계의 사물로부터 그림의 착상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영감으로부터 착상을 얻기도 합니다. 그것은 나와 똑같습니다. 





 


하루에도 백 가지 일들이 떠올라 화가의 주의를 흩뜨려 놓고 딴 데로 끌고 가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그림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그는 그런 것들에 맞서 저항하지 않고, 그냥 그것에 기울여도 될 만한 정도의 주의만 기울이고 이내 그림으로 돌아옵니다. 


 


나도 마찬가지죠. 그의 그림이 완성되면 다시 새 그림을 시작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 합니다. 나는 의식이나 정신으로는 결코 활동을 멈추는 법이 없거든요. 활동을 멈추고 있는 것은 곧 퇴보하는 것이죠. 



 


한 가지 비근한 예를 들어 보지요. 가령, 내가 나의 수행원이 지금 당장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합시다. 그러면 나는 마음속의 그림으로 내 앞서 서 있는 그 사람을 봅니다.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공간이 그림 속의 배경으로 채워져 있지요. 그러면 잠시 후, 그 영상이 현실 속에 ‘그려져 나오는 것’ 입니다. 



 


만일 내가 부를 얻고자 한다면, 나는 그 그림을, 본능적으로 그만한 부에 어울리겠다고 느끼는 온갖 것들로, 내가 당연히 포함시켰으면 하는 모든 조건들과 소유물들로 채울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나는 그 착상을 다른 데서 얻을 수 있겠지요. 


 


즉 현실에 그려진, 외부 현실화한 다른 사람의 성공의 그림에서 말입니다. 나는 평소의 직무를 열심히 할 것입니다. 외부 세계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내면에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가령 내가 초심자이고, 새 자동차나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다면, 나는 내가 바라는 그것들과 아주 흡사한 사진을 잡지에서 골라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눈길이 자주 가는 곳에다 붙여 두는 겁니다. 이것이 바깥쪽 마음을 옆길로 새지 않게 붙들어 주고 내 이상이 그려져 나오는 일을 재촉할 테니까요. 


이제 여러분은 간단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훈련을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강력한 단어 목록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이 단어들은 여러분의 생명력에 영양공급을 해 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들을 창출해 내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내면의 활동에 필요한 모든 힘을 줄 것입니다. 


 이것이 그 목록인데, 물론 여러분이 여기에 추가하고 싶은 게 있으면 추가하셔도 좋습니다. 



        집중    박애    평화   무저항  평정    정의    조화로움 


        숙고    선의    자유    정직    모범    지혜    활발     


        친절    관용    이해    활력    영감    동정    겸손 

   

        권능    지성    평온   결단력  사랑    기억력  아량 


        공감   온화함  법칙   창조력  은총    생명    신뢰 


        젊음    확신    예의    풍요    성공    우수함  행복 


        영혼    건강    화합    끈기    강인함  목적    성실성 


        성취    에너지  승리   유능함 



하루의 활동이 끝나서, 일상의 직무와 일들로 여러분의 생명력이 다소 소모되었을 때, 방해 받지 않고 혼자 고요히 평정을 이룰 수 있는 저녁 시간에 30분쯤, 가능하다면 한 시간 정도를 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 시점의 여러분의 필요성에 부합한다 싶은 단어들을 목록에서 고릅니다. 아니면 그냥 첫 단어부터 시작해서 자기 속도에 맞추어 다음 것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해도 됩니다. 각 단어가 여러분 존재에 ‘뚜렷한 인상’을 남기도록 하면서, 각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 단어가 여러분에게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주목합니다. 꼭 그 단어의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의미를 중시하면서 그럴 것까지는 없고, 다만 그것이 여러분에게 와 닿는 의미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거듭 강조하는 사실이지만, 여러분은 바로 자기 세계의 권능인 그 ‘나’이며, 여러분 자신의 두 발로 굳건하게 서서 그 ‘나’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꼭 그 ‘나’를 현시 할 필요까지는 없고 단지 그 ‘나’로서 살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 충고해 두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긍정적인 마음 상태에 있지 않다면, 또 여러분이 되뇌는 단어에 대한 전적인 확신이 없다면, 그 단어들을 넣어서 ‘나는 ~~이다.’ 라고 선언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가령 여러분이 그런 상태에서 ‘나는 권능이다.’라는 선언을 하면 그것은 안쪽 마음을 바깥쪽 마음이 부정과 의심으로써 공격해 오기 딱 좋은 상태로 내놓는 꼴이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목록의 단어만을 그냥 되뇌면 - 그러니까 그냥 ‘권능’하고 속으로 말하는 식으로 하면, 그 단어는 무슨 선언이나 주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바깥쪽 마음은 부정하거나 의심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 훈련에 임하는 올바른 태도는, 최소한 순간적으로라도 자기 몸에 대한, 그리고 외부의 일과 사물에 대한 생각을 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동적으로 여러분은 이상적인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물론 바깥쪽 마음이야 떠돌아다니면서 수백 가지의 잡동사니를 수백 차례에 걸쳐 끌어들이겠지요. 


그러나, 아까 길을 잘 몰라 헤매는 자동차 얘기를 했지만, 그 자동차처럼 자꾸만 제가로 돌려놓으면서, 그때그때 바른 길로 이끄십시오, 이렇게 하는 동안 바깥쪽 마음의 이러한 방랑벽은 차차 줄어 갈 것이고, 여러분은 어느새 집중의 대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훈련과 관련해서 결코 긴장하거나 악착을 부리거나 조바심치거나 걱정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어쩌다 사업이나 모임, 혹은 가족의 일로 붙잡히게 되는 때가 아니면 매일 저녁을 이 훈련에 바치십시오. 여기의 단어들이 여러분 존재에 스며들어 가득 차게 하십시오. 그러면 마치 구정물 속에 방울방울 맑은 물이 흘러들 때처럼, 비본질적인 것들은 한 방울씩 밀려나가고 결국에는 본질적인 것들만 남게 됩니다. 


이 위력적인 단어들은 자동적으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내고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단어들은 여러분이 섭취하는 음식물의 영양분이 여러분의 몸에 작용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게 여러분의 안쪽, 바깥쪽 마음에 작용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먹는 음식물에 대해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훈련에 대해 효과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이 명상을 매일 저녁 가능한 규칙적으로 하고 나서는 그 다음날 저녁까지 이 훈련에 대해 잊어버리십시오. 그 단어들은 내면에서 여러분도 모르게 그들의 일을 하게 되며, 그리고 그 효과는 곧 여러분과 여러분의 일에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 법칙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여러분이 얻고자 결심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얻기 위해 별도의 돈이나 친구들, 혹은 외부의 영향력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현실 생활에서 여러분의 직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야망이 지금 맡은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든, 아니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것이든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공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 외에는 인생 어떤 뚜렷한 계획이 없어도 좋습니다. 


세상의 온갖 욕망을 다 갖고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마음속에 하나의 ‘확고하고 분명한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생각한 후에 한 가지의 지상의 목표를 정하십시오. 설령 그것이 아득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첫 번째 고지는 어디입니까?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월간 매출액의 확실한 증가가 그것인가요? 아니면 직장인인 경우에는 승진과 봉급인상이 그것인가요? 저 지상의 목표에 이르기 위한 첫 번째의 가장 가까운 목표부터 정하십시오. 


첫 번째 목표에 이르렀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느냐? 그 너머에 있는 다른 목표를 ‘지체 없이’ 정하십시오. 왜? 바깥쪽 마음의 특질은 일단 뭔가 하나를 달성하고 나면 원래의 타성 속으로 발랑 나자빠지는 것이거든요. 바깥쪽 마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휴우, 나는 지금까지 그 목표를 위해 무자비할 정도로 혹사를 당하고  강압을 받았어. 이제 목표를 달성했으니 나는 좀 쉬어야겠다.” 


당신의 대답은 이렇게 되는 거죠. 


“누가 쉬라고 했지 ? 나는 너를 벌써 다른 목표를 위해 출발 시켰는데?"


일단 충분한 관성이 붙으면 그것을 ‘유지’하십시오. 그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관성이 증가함에 따라 전진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 가서, 마침내는 어떤 목적에 거의 순간적으로 도달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여러분이 목적한 것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 거치는 공정은 씨앗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꼭 같습니다. 씨앗은 일단 캄캄한 흙 속에 심겨지면 자기 생명 세포 속에 담긴 정확한 그림을 표출, 즉 밖으로 그려내기 시작합니다.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것은 싹을 광명 속으로 내밉니다. 그와 동시에 자양분을 찾아 아래로 뿌리를 내립니다. 싹은 위를 향해 나가는 길에 갖가지 형태의 장애물들에 부닥치지만 방해가 되는 그것들을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 않고 그것들을 돌아서 가지요. 뿌리가 필요한 자양분을 찾지 못하면 그것은 말라 죽습니다. 모든 과정이 잘 되면 마침내 활짝 피어납니다. 목적은 이루어졌고, 다시 씨앗 하나가 떨어져 그 과정이 되풀이됩니다.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그 실질적인 과정이 표면 아래의 캄캄한 암흑 속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똑 같습니다. 표면 아래의 암흑, 그곳이 바로 모든 위대하고 중대한 생각들이 자라나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훔쳐보려고 자꾸 흘끔거리고 있을 건가요? 그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로 일이 돌아가기나 하는 건지 갸웃거리고 있을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은 목표를 정했습니다. 여러분은 씨앗을 심었습니다. 


여러분은 정원에 심은 씨앗에서 싹이 트나 보려고 그것을 파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그리고는 씨앗이 그 존재의 법치에게 따라 자라나올 것임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여러분의 목표가 외부 현실화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주의 법칙을 깨뜨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생각이라는 씨앗을 심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그 자리에 간직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에 자양분을 공급합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의 할 일은 다 한 것입니다. 나머지는 우주의 법칙이 알아서 할 것임을 믿으십시오. 


저항에 부닥치지는 않겠느냐구요? 물론, 저항이 있지요! 여러분의 활동은 저항을 자아냅니다. 왜?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니까요. 작용은 그것을 지탱해 줄 반작용을 필요로 합니다. 저항은 음극이요, 활동은 양극으로서 여러분은 이 두 가지를 다 필요로 합니다. 만약 저항이 없을 것 같으면 활동도 불가능하지요. 


비행기를 하늘에 떠 있게 하는 것도 바로 저항입니다. 저항이 없이는 날 수가 없지요. 새들 역시 날지 못하며, 물고기도 헤엄칠 수 없고, 사람은 걸을 수가 없지요. 엔진의 동력이 증가할수록, 사람은 걸을 수가 없지요. 엔진의 동력이 증가할수록, 비행기는 더 큰 관성을 얻게 되고 그 관성을 지탱하기 위한 저항도 그 만큼 더 커집니다. 


관성이 커질수록 더 높은 비행 고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예로 생각되는군요. 우선 관성이 붙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것이 유지되어야만, 우리는 드높은 성공의 절정에 이를 수 있으니까요. 초반의 명백한 난관을 넘어서기만 하면 아주 신나는 일입니다. 뭔가 가치 있는 일을 달성했을 때의 만족감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으니까요. 


이 위대한 진리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사람이나 사물, 혹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써, 헐뜯거나 비난하거나 시샘하거나 질투하거나 증오하는 식의 저항을 한다면, 그것은 가장 확실히 그들을 돕는 일이 되고, 자기 자신은 그 만큼 약화시키는 일이 됩니다. 왜 그러냐구요? 그것은, 자신의 발전에 써야 할 고귀한 생명력의 일부분을 스스로 떼어내서, 그것을 바로 그 사람이나 사물에 옮겨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발작적인 분노를 터뜨린 사람이 그 다음 순간 탈진상태가 되어 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겠지요? 탈진상태라는 말은 뭔가 내부에 있던 것이 없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뭔가가 빠져나갔습니다. 상대방에게는 득이 되고 자신에게는 실이 되는 쪽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예로써 생명력이 폭력의 옮겨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가르침을 실천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가령 목적지를 향해 세차게 불고 있는 바람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한번 볼까요? 바람은 어떤 사람이나 장소나 사물도 자기를 방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바람은 개체를 초월해 있습니다. 태양과 비와 바람은 구별 없이 만물 위에 비치고 내리고 봅니다. 그들은 결코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선별적으로 돕거나 해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은 사실 여러분을 ‘돕고 있는’ 셈이고, 그런 만큼 그들을 여러분의 친구로 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주 고차원의 지혜이지요.  


여러분의 염원의 비밀을 마음속에 단단히 잠가 두십시오. 그러면 바깥쪽 마음에 반발이 일어나겠지요. 바깥쪽 마음은 교육이나 통제를 받지 않으려고 반항하는 기질이 있으니까요? 


바깥쪽 마음은 자신이 곧 자유를 박탈당할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마치 울안에 갇힌 야생의 들소처럼 기를 쓰고 탈출구를 찾아 날뛰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도 여러분이 터놓은 길로는 가지 않으려 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바입니다. 


바깥쪽 마음은 여러분에게 별의별 주장들을 다 들고 나와, 여러분의 목적은 헛된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려 할 것입니다. 바깥쪽 마음은 여러분에게, 계획과 포부를 남들한테 말해 보라고도 할 것이고, 여러분의 작업추진을 좀 늦추라고도 할 것이고, 여러분의 편이 되어 작용하고 있는 저 우주적 법칙의 힘을 의심하라고도 할 것입니다. 동원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으로 훼방을 놓으려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이 모든 것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은 이것이 되겠습니다. 


“복종해. 여기, 내가 바로 주인이시다.” 


여러분이 자기 존재의 주인이라는 태도를 취하십시오. 그리고 목표를 향한 길을 확고히 지키십시오. 때로 여러분은 이상한 곳들로 이끌려 들어갈 수도 있고 에두르는 길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 때문에 동요하지는 마십시오. 조종석에 앉은 안쪽 마음의 지혜가 있으니, 때로 가장 먼 길로 가는 듯이 보여도 여러분은 가장 빠른 길로 인도 받아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충고는 지금 여러분이 초보자니까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차츰 숙달된 상태에 이르면 이런 대처 능력은 아예 여러분 존재의 일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쪽에서 어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 능력들이 발휘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끈기 있게 목표를 고수하고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게 되면, 바깥쪽 마음은 그 증대되는 에너지의 배출구를 찾지 못하여, 마치 가압된 증기가 보일러의 안전밸브를 통해 치밀고 나가듯이, 필사적으로 목표를 향한 길로 돌진하여 목표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으로서 가르침은 끝났습니다. 이제 나머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 여러분이 아는 것을 실천하십시오. 


 이 법칙을 따라 살아나가면 여러분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부류의 인물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끌리면서도 왜 그런지 이유는 알지 못하겠지요. 거리에서, 모임에서 일터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에 우쭐하지는 마십시오. 겸허하게, 이런 일을 가능케 해 준 저 위대한 ‘지고의 권능’에 감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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